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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에 성폭력·마약까지...실적지상주의가 만든 '스타트업 괴물들'

'셀레브 사태'로 본 스타트업 CEO 리스크
온오프믹스·봉구스밥버거 등
젊은 나이에 '고속출세·돈벼락'
영웅주의 빠져 본업 외면하기도
정부 지원에 모럴해저드 가능성↑
계약서에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 박해욱 기자
  • 2018-05-02 17:23:40
갑질에 성폭력·마약까지...실적지상주의가 만든 '스타트업 괴물들'

‘갑질 파문’으로 세간의 빈축을 샀던 셀레브 사태를 계기로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 리스크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사외이사제나 감사위원회 등을 통해 CEO 리스크를 예방하는 대기업과 달리 매출 등 실적만이 CEO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동하는 관행이 이러한 상황을 몰고 왔다는 분석이다. 정부의 강력한 창업 육성 의지로 벤처 자금이 넘쳐나면서 모럴 해저드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이를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부터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콘텐츠 스타트업 셀레브 A대표가 갑질 파문으로 사퇴하면서 스타트업계의 도덕적 해이 사건들이 새삼 주목 받고 있다. A대표는 여직원을 유흥업소에 데려가 강제 동석시키는 등 각종 갑질 행태가 논란이 됐고,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을 괴물로 규정하는 사과문을 발표하며 물러났다. 이에 앞서 온오프믹스 창업가의 투자자 대상 준강간사건, 봉구스밥버거 대표의 마약 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스타트업계의 허술한 CEO 견제 장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 사건은 창업가의 갑질이 빚은 추문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벤처투자업계의 실적지상주의 투자 관행이 낳은 부작용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숫자(실적)만 나오면 된다’는 식의 투자 과정에서 CEO의 윤리성에 대한 검증 절차는 무시된다. 투자유치 이후 투자자의 성과 압박까지 커지면서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투자자는 “사업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지가 투자판단을 결정하는 1순위 요인”이라며 “온오프믹스 사건 초기 일부 투자자들이 그를 비호하는 식의 이야기를 했던 것도 결국은 자신들의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다는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적 지상주의가 낳은 비극=벤처캐피털이나 사모펀드(PEF)는 투자를 결정하기에 앞서 사업성 평가, 재무제표 분석, 법률 검토 등의 과정을 거친다. 이때 투자자가 가장 유심히 보는 항목은 사업성이다. 아이디어가 상용화됐을 경우 얼마나 빠른 시점에 기대 수익을 회수할 수 있는지 여부다. 박병건 대신PE 대표는 “투자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기업이 얼마나 돈을 불려줘서 돌려줄 수 있는지 여부”라며 “개인의 도덕성 문제까지 들여다보는 투자자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투자 여부를 최종 결정할 때 창업가의 자질 평가도 진행한다. 지인을 통한 평판 조회나 심층 면접을 활용한 윤리검증 등을 거치지만 어디까지나 정성적 평가일 뿐 구체적인 항목을 명시해 검증하지는 않는다.

정장근 JKL파트너스 대표는 “투자심사 단계에서 CEO의 일탈을 걸러내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며 “CEO의 일탈 행위가 계속 나오면 신규 투자가 줄어들 수는 있지만 대부분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더구나 실적까지 좋으면 (도덕적 일탈 행위를) 견제하기는 더욱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빠른 성공, 그보다 빠른 추락=대다수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20~30대 초반으로 사회 생활 경험이 적다는 점도 모럴 해저드의 가능성을 높이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한국스타트업생태계포럼의 자료에 따르면 창업가의 평균 연령은 35.8세에 불과하다. 어린 나이에 거둔 ‘고속 출세’와 ‘돈벼락’은 지속적인 성장을 저해하기 마련이다. 외부 투자를 성사시키면 창업자들은 그 나이에선 좀처럼 만져보기 힘든 큰돈을 벌게 된다. 대다수 투자는 신주발행이 아닌 구주매출로 이뤄지고, 이때 지분매각 대금이 창업자 계좌로 들어온다. 배고픈 창업 초기 시절 만져볼 수 없었던 뭉칫돈은 어린 창업가들을 일탈의 늪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최근 들어 청년 창업을 독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창업가들을 도전정신과 창의성으로 무장한 셀렙(유명인사)으로 띄우는 문화까지 나오고 있다. 어린 나이에 받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사업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일종의 영웅주의’에 빠져 본업을 도외시하는 부작용을 낳기 십상이다.

그들만의 리그, 시스템으로 관리해야=스타트업 업계의 폐쇄적인 문화 역시 CEO 리스크에 눈을 감아주는 관행에 적지 않게 작용한다. 지난해 온오프믹스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한 여성 스타트업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업계를 지탄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스타트업계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을 보면서, (업계의) 오피니언 리더들의 침묵을 보면서, 소수의 여성을 대표하는 일원으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며 “오피니언 리더들이 입을 다문 것은 유감”이라고 꼬집었다.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된 상황에서 장점은 극대화하되 단점은 애써 눈감는 풍토가 CEO의 도덕적 일탈에 관대한 투자 관행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투자계약서 상에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대기업도 CEO 리스크 예방을 위한 여러 제도적 장치를 운영하고 있는데 개인의 역량이 곧 사운을 결정하는 스타트업은 더욱 강력한 CEO 리스크 예방 수단이 필요하다”며 “CEO의 도덕적 리스크를 시스템적으로 100%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모럴 해저드가 발생할 경우 자금을 회수하는 등의 조항을 넣어 경각심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해욱·서민우·심우일기자spook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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