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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단축 후폭풍]"장사 망칠라" 근로단축 시행전 울며 겨자먹기로 재고 쌓아

보일러·김치냉장고업체 등 예년보다 앞당겨 공장 풀가동
시장상황 달라지면 '악성 물량'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판
계절업종·납품비중 높은 업종 탄력근로제 적용 서둘러야

  • 정민정 기자
  • 2018-06-08 17:09:05
[근로시간 단축 후폭풍]'장사 망칠라' 근로단축 시행전 울며 겨자먹기로 재고 쌓아

보일러 제조업체 A사는 전통적인 비수기인 요즘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다. 성수기가 겨울인 보일러 특성상 예년 같으면 9월부터 공장이 분주하지만 올해는 몇 달 앞당겨진 셈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가을과 겨울에 수요가 몰리는 계절상품의 특성상 성수기에 맞춰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면 한철 장사를 망치게 된다”며 “당장 7월부터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성수기 물량에 대응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판단하에 재고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8일 중견·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오는 7월부터 본격 시행되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응하기 위해 재고 확보, 아웃소싱 활용, 시간제 근로자 채용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계절 수요가 구분되는 보일러나 김치냉장고·제지업체들은 재고 확보를 통한 선제 대응에 나섰으며 부품협력업체들은 원청의 갑작스러운 발주에 대비해 재고를 쌓아 놓고 있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유동적인 만큼 악성 재고를 떠안을 위험이 큰 데다 주문이 몰릴 경우 법의 테두리 안에서 소화할 수 없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정부가 기대하는 신규 인력 채용 효과에 대해서도 현장에서는 의구심을 나타내며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 보완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보일러 업체 B사 역시 성수기가 몇 달 남았지만 생산량을 최대한 끌어 올리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보통 성수기 시즌 최고점을 찍는 생산 물량을 100이라고 가정하면 비수기에는 60% 수준만 생산하고 애프터서비스 점검이나 직원 교육 등에 투입했는데 지금은 비수기임에도 성수기 평균 물량인 80%를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겨울과 봄 시즌이 성수기인 제지업계도 근로시간 단축 시행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일찌감치 4조 3교대를 편성해 주 52시간 근무시간은 맞춰 놓았지만 일감이 몰리는 성수기에는 이를 지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익명을 요구한업계 관계자는 “현재 운용 중인 4조 3교대는 근로시간 단축 시행에 딱 맞출 수 있는 최소한의 인력으로 휴가나 출장으로 결원이 생기면 인력 공백은 불가피하다”며 “지금까지 성수기에 결원이 생기면 나머지 인력이 추가 근로를 통해 이를 메우곤 했는데 올해부터는 이런 방식이 불가능하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회사 차원에선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추가 인력 확보에 나섰지만 신규 인력이 커버할 수 없는 설비 운용 등 전문적인 파트라 (근로시간 단축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며 “지난해 이맘때 수준에 비해 적재량을 늘리며 재고 확보에 애쓰고 있지만 수요가 줄어들 경우 고스란히 악성 재고를 떠안게 되는 리스크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치냉장고와 에어컨 등 주방·생활가전을 만드는 중견기업 C사는 7월부터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더라도 정규직을 채용하지 않을 계획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주력 제품인 에어컨과 김치냉장고는 계절 수요가 뚜렷하다”며 “일시적으로 일손이 부족하다고 정규직을 채용하면 비수기에는 사람을 놀릴 수밖에 없고 이는 고스란히 인건비 부담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마련한 대안이 인력파견업체를 통한 단기 계약직 인력 채용이다.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 8~9월에 맞춰 숙련 직원을 계약직 형태로 고용하는데 7월부터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면 단기 파견 인력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위생도기와 비데를 제조 판매하는 D사의 경우 현재 인력을 주 52시간 근로 시간에 맞춰 돌렸을 때 총 생산량이 예전에 비해 24%가량 떨어진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얻었다. 근로시간 단축 본격 시행에 앞서 재고 확보를 위해 공장가동률을 높였지만 일시적인 대증요법인 만큼 대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미국 등에서 수출 주문이 들어오고 있지만 근로시간 단축조치가 시행되면 발주물량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시행에 앞서 재고확보를 해놓았지만 실제 효과는 크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24시간 보안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보안업체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에스원과 ADT캡스의 경우 각각 2,000여명의 출동 요원을 확보하고 있는데 24시간 출동 서비스를 운영하다 보니 근로시간 자체가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 3교대 방식으로 주간·야간·휴무를 교대로 돌리고 있지만 대기 시간까지 근무 시간에 포함돼 있어 실제보다 근로 시간이 많이 책정되는 게 고민이다. 업체의 한 관계자는 “사용자 입장에서는 대기 시간은 휴게 시간으로 간주하고 싶고 출동 요원 입장에서는 근로 시간으로 주장할 수밖에 없다”면서 “주야간 12시간 중에 대기 시간을 제외한 근무 시간을 1일 10.4시간으로 간주하고 주 52시간에 맞추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신규 인력 채용이라 회사의 부담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충분한 인력이 공급되지 못해 현장의 안전성이 위협 받거나 악성 재고에 대한 부담으로 경영난을 부추기는 등 부작용이 속출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성수기와 비수기 격차가 큰 계절 업종이나 수출 등 납품 비중이 높은 업종은 선별적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하는 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서비스 업종은 대기 시간 자체가 길기 때문에 근로시간 단축 이슈는 제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업에서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며 “업종별 특성에 따른 세밀한 대책을 추진하는 한편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최소 6개월 이상 확대하는 등 보다 유연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민정·서민우·박해욱기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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