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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WHAT]죽의 장막 걷어내고...냉전종식 이끌고...세기의 담판, 국가 운명도 바꿨다

■美대통령 '세기의 회담들'
2년 준비기간 거친 닉슨·마오 회담
공산주의 中, 국제무대로 이끌어
네차례 만난 레이건·고르바초프
동·서독 통일의 기폭제 되기도
1961년 케네디·흐루쇼프 회담은
설전 속 결렬...쿠바 위기 도화선

  • 손철 기자
  • 2018-06-08 17:25:13


[글로벌 WHAT]죽의 장막 걷어내고...냉전종식 이끌고...세기의 담판, 국가 운명도 바꿨다

오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전 세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주하는 ‘세기의 정상회담’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례 없는 이번 정상회담의 성패가 한반도 정세는 물론 향후 글로벌 정세의 큰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 ‘세기의 회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존재감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지난 세기 이래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에게 외교적 성공과 실패를 안겨온 무수한 정상회담 중에서도 이번 북미 정상회담이 그 어느 회담 못지않게 어렵고 그 파장을 종잡을 수 없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미국 언론들과 정치권이 과거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던 역사적인 정상회담들에 주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북미회담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샀던 트럼프 대통령도 최근 과거 ‘적수’들과 미국의 관계를 바꿔놓은 주요 정상회담들을 돌아보며 내공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로는 준비 부족으로 최악의 냉전 위기를 초래하기도 하고 실패인 줄 알았지만 결과적으로 커다란 성과의 단초가 된 회담까지, 어떤 외교행위보다도 복잡하다는 미국 대통령의 정상외교 역사는 다가올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단기적이고 단면적인 평가를 할 수만은 없게 만든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추진되면서 미국 언론들이 가장 이상적인 ‘본보기’로 지목한 사례는 지난 1972년 베이징에서 열린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전 중국 국가주석의 첫 미중 정상회담이다. 현대사의 전환점으로 평가받는 닉슨 전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은 여러모로 성공적 회담으로 꼽힌다. 강력한 반공주의자였던 닉슨 전 대통령이 ‘죽의 장막’에 가려졌던 중국을 국제사회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회동과의 유사성도 거론된다.

닉슨과 마오의 회동 이후 미중 간 수교에 징검다리를 놓는 등 성과를 거둔 데는 타이밍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지만 2년 가까이 진행된 철저하고 세심한 준비가 주효한 것으로 분석된다. 첫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기 한 해 전에 미국 탁구팀이 중국을 방문해 ‘핑퐁 외교’로 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고 ‘외교의 귀재’인 헨리 키신저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극비리에 중국을 찾아 저우언라이 전 총리와 정상회담 개최를 심도 있게 협의했다. 이 같은 사전작업이 처음 만나는 정상 간 신뢰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결국 미국이 1978년 대만과 단교한 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해 1979년 1월1일 중국과 수교하는 데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 간 정상회담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 가장 현실적으로 시사하는 점이 클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1985년과 1986년 각각 스위스 제네바와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연쇄 정상회담을 한 후 두 차례 더 만난 끝에 핵무기 등 군비 축소에 합의했다. 서슬 퍼런 냉전 와중에 6년 만에 만난 두 정상은 제네바 회동에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다정하게 산책하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줘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레이캬비크 인근 숲 속 별장에서 48시간 동안 진행된 군비 축소 정상회담의 경우 레이건이 소련 측의 전략방어구상(SDI) 폐기 제안을 거부하면서 회담 결렬이라는 최악의 사태로 끝나는 듯 보였지만 이 회담으로 서로의 의지를 확인한 양국이 끝내 군비통제협상을 타결해 냉전이 막을 내리는 서막을 열었다는 점에서 훗날 역사상 성공적인 정상회담으로 재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후 레이건의 바통을 이어받은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1989년 고르바초프와 몰타회담을 통해 냉전체제에 마침표를 찍었다.

반면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1961년 6월 초 취임 4개월여 만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니키타 흐루쇼프 전 소련 서기장과 벌인 냉전회담은 성급함으로 안보 위기를 불러온 외교적 참사로 기록된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미국·소련 정상회담 개최로 젊은 대통령의 경험 부족 우려를 잠재우려 했지만 다혈질의 흐루쇼프 전 서기장과 여러 현안을 놓고 설전만 벌이다 핵심 이슈인 핵실험금지조약(CTBT)은 거의 다루지도 못했다. 미국 대통령을 만만하게 본 소련은 회담 2개월 후 베를린에 장벽을 세웠고 이듬해에는 쿠바에 핵탄두 미사일 배치에 나섰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후일 “흐루쇼프와의 준비 안 된 만남은 재앙과도 같았다”고 후회하면서 이 회담이 소련과의 핵전쟁 위기를 초래했을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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