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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암호화폐 채굴업자다"

비트코인 제네시스 블록 채굴 10년
부침 심한 암호화폐 시장..개인 채굴자의 일상
가격하락, 채굴기업과 경쟁, 정부의 무관심
주변 이해도 낮지만, 블록체인 생태계 심장 자부

  • 민서연 기자
  • 2019-01-03 11:13:14
'나는 암호화폐 채굴업자다'

※비트코인 최초의 채굴, 제네시스 블록이 세상에 나온 것이 10년 전 오늘입니다. 비트코인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죠. 디센터는 국내 채굴자들과 연쇄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부침이 심한 암호화폐 시장에서 매 순간 끊어지지 않을 체인을 엮는 채굴자들의 일상을 가상 르포에 담아 봤습니다./ 편집자 주

느즈막히 눈을 떠 작업장으로 갔다. 원래는 더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수익성 떨어지는 요즘은 의욕도 함께 떨어져 늦잠을 자는 일이 잦다. 여기저기 쌓인 먼지부터 털고 나니 어깨가 아프다. 장이 한창 좋을 때는 채굴기를 250대까지 돌리며 ‘귀찮은 데 먼지털이 알바나 써볼까’하는 생각도 했었지만...오늘보다 내일 더 떨어질 지도 모르는 하락장에선 가당치도 않다.

‘채굴’을 처음 알게 된 건 2015년 말 경. 친하게 지내던 고객으로부터 우연히 알게 된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의 세계, 그리고 블록체인은 그 때만 해도 내게 뜬구름같은 이야기였다. 이후로 호기심 반 진심 반으로 블록체인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 그땐 공부할만한 서적이나 콘텐츠들이 없어서 정말 힘들었다.) 공부를 겸해 시작한 채굴에 재미를 붙이면서 다니던 직장마저 때려치웠다.

나의 첫 채굴은 이더리움이었다. 지금이야 10만 원 밑으로 떨어지네 마네 하는 상황이지만, 그 때만 해도 안정적으로 20만 원 선, 특히 작년 1월엔 100만 원도 넘겼다. 2017년 12월은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채산성을 자랑했던 한 달이었다. 재미가 돈이 되니 더 열정적으로 채굴에 매달렸다. 딱딱한 직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일과를 즐기며 공부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가격이 올라간다 싶으면 팔고 되는대로 몇 대씩 채굴기를 늘려가는 재미도 있었다. 그렇게 2018년을 맞이하고 상승세에 올라탄 암호화폐 시장과 비트코인 가격은 정상을 향해 치솟았다. 이 때 가진 코인들을 한번 쭉 정리하고 나니 꽤 많은 자금이 생겼고, 내 선택에 대한 불안감 대신 확신이 자리잡았다. 날아갈 듯이 기뻤다.

언론에서도 블록체인을 주목하고 암호화폐를 조명하기 시작했다. 암호화폐가 뭐고 비트코인은 뭔지 관심도 없던 가족들과 일가 친척들도 하나 둘 물어보기 시작했다. 하는 일이 뭔지 알려주는데 만 1시간은 걸렸던 것 같다. 블록체인을 이해해도 암호화폐와 무슨 관계인지 설명하는데 애를 먹었다. 다 듣고 난 친척 중에는 채굴을 해보고 싶다는 이들도 있었다. 나이 어린 조카가 채굴로 돈을 번다고 하니 신기하다며 가르쳐달라고 조르는 것이 아닌가. 암호화폐 가격이 언제 떨어질 지 모른다며 말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다행이다 싶다. 그 원망을 어떻게 감당하랴.

'나는 암호화폐 채굴업자다'

암호화폐 하락에 가슴 졸이는 것도 하루 이틀.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하락장을 쳐다보고 있으니 채굴업을 접어야 하나 생각도 든다. 원래 하던 광고 쪽 일과 블록체인 쪽 지식을 활용해 직장을 잡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중고 채굴기 판매를 알아봤다. 세상에... 올해 초 구매했던 15만 원짜리 그래픽카드 중고 시세가 7만 원도 안된다. 한때 ‘잘 안되면 팔면 되지’라며 채굴기를 자산으로 생각해 온 내가 원망스러웠다. 감가상각을 아무리 높게 쳐준다 해도 이 가격은 믿기지 않았다. 시장의 폭락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하며 어느새 정든 기기들을 조금 더 붙들고 채굴해보기로 했다.

채산성, 수익성 떨어지는 채굴을 왜 하는지 가만히 생각해봤다. 돈도 돈이지만 블록체인에 대한 믿음도 한 몫을 해온 것 같다. 주위 사람들에게 “요즘 암호화폐 채굴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하면 돌아오는 부정적 반응. ‘비트코인 그거 다 사기야, 정부가 투기 수단이라고 제재하고 있잖아’가 뒤를 잇는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따로 떨어트려놓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탈중앙화의 가치와 기존 경제와 완전히 다른 토큰 이코노미를 열심히 설명하고 나면...그래도 나쁘댄다.

일반인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지난해 초 법무부 장관의 한 마디에서 시작된 가격 대폭락, 일명 ‘박상기의 난’. 이때 얼마나 정부 욕을 했던가. 이란은 채굴을 국가 공식 산업으로 지정했고, 일본은 재생가능에너지로 채굴을 장려한다고 한다. 한국 정부의 태도는 규제도, 장려도 아닌 ‘방관’이다. 정확히는 ‘눈치보기’. 암호화폐 거래에 있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볼 수 있는 투기, 사행성 거래는 거래소 시스템이나 투기세력, 불법 자금 모집에 있는데 이들로 인한 피해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의 관리가 없으니 대중들의 인식에는 ‘피해만 주는 도박시장’으로 남아버린 게 한국의 블록체인 산업이다.

채굴사업도 노후 건물이나 빈 공장을 채굴장으로 임대 활용하기도 하고 환풍기 및 관련 기기업자들과 함께 일하며 전통 산업에 활기를 돌게 하는 역할도 하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투기에서 손 떼라고 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전기 안전 시설과 적정 규격, 가이드 라인만 국가에서 지정해준다면 새로운 시장이 될 텐데 채굴분야에 대해선 실태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씁쓸하다.

2019년 1월 3일, 오늘은 비트코인 제네시스 블록이 채굴된 지 딱 10년 째 되는 날이다. 블록을 만들고 계약을 검증하는 채굴자는 블록체인 생태계를 실질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심장이라고 자부한다. 채굴업은 멀리 봐야 한다지만, 죽어버린 시장과 대형 채굴 풀이 들어오면서 나같은 개인 채굴자들은 설 곳이 없다. 게다가 채굴시장은 해시율이 높은 쪽이 코인을 캐가는 철저하게 돈과 자본의 논리가 적용되는 곳이다. 비트메인같은 대형 채굴기업과 개인 채굴업자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어제는 커뮤니티에서 만난 친한 형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채굴을 접고 본업에 충실하겠단다. 나 역시 앞으로 얼마나 더 채굴을 할지 모르지만 탈중앙화를 믿으며 오늘도 ‘존버(열심히 버티기의 준말)’한다.
/민서연기자 minsy@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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