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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제 ‘트래블 룰’ 마주한 암호화폐 거래소, 기술·협력·제도 모두 필요하다

  • 도예리 기자
  • 2019-09-25 08:30:00
난제 ‘트래블 룰’ 마주한 암호화폐 거래소, 기술·협력·제도 모두 필요하다

지난 6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권고안이 공개됐다. 암호화폐를 포함해 가상자산을 취급하는 거래소와 사업자에게 기존 금융권 수준의 자금세탁방지의무(AML)를 지도록 하는 게 골자다. 가상자산을 송금할 때 송금, 수취 기관 모두 관련 정보를 수집·보유해야 한다. 이른바 ‘트래블 룰(Travel Rule)’이다.

가상자산 취급 업체(암호화폐 거래소)가 확인 및 보관해야 하는 정보는 총 5개다. △송금인 성명 △거래처리에 사용된 송금 계좌번호(예컨대 암호화폐 지갑 주소) △송금인 주소 또는 국가등록 신분번호 또는 신원 식별이 가능한 처리업체 등록 고객번호 또는 출생연도·출생지 △수취인 성명 △거래 처리에 사용된 수취계좌번호(암호화폐 지갑주소 등)다.

블록체인 업계 일각에선 트래블 룰에 따르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블록체인 기술의 특성상 수신자 정보는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6월 21일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회가 ‘FATF 권고안이 암호화폐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진행한 간담회에선 이 같은 주장이 강조됐다. 당시 김진희 도쿄미츠시비은행 아시아 태평양지역 자금세탁방지 준법감사직(APAC HEAd of AMK Governance & KYC MUFG)은 트래블 룰을 설명하며 “(FATF가) 이 조항을 권고하고 밀어붙이면 블록체인 업계는 이 기준을 맞출 수 없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해서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트래블 룰’은 자금세탁방지를 하는 데 있어서 핵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트래블 룰 도입 배경

트래블 룰은 전통 금융산업에서 자금세탁방지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다. 거래자 신원 정보 제출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이 용어는 미국 은행법에서 유래됐다. 금융기관이 특정 자금을 금융기관에 이체 시 특정 정보를 넘겨줄 것을 명시한 법이다.

FATF는 각국 국경 간 전신 송금 시 최소기준금액(1,000 USD·EUR)을 기준금액으로 정하여 국가 간 전신송금을 규제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우리나라는 지난 2013년 8월 13일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을 개정하면서 트래블 룰에 대한 규정을 신설했다. 전신 송금 정보제공에 대한 규정을 명시한 것이다.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전신 시스템을 이용해 자금을 송금하는 자들에 대한 각종 거래 정보를 확보해 사법 집행기관 등으로 하여금 자금세탁 및 금융범죄의 인지·수사 및 기소를 위해 트래블 룰이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2013년 특금법 개정 이유에도 트래블 룰 조항의 신설 취지가 “전신송금 금융회사가 수취 금융회사에 송금 내용을 제공하도록 해 금융거래를 이용한 자금세탁행위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데 있다고 나와 있다.

자금세탁방지에서 트래블 룰이 갖는 의미

암호화폐는 전자지갑 주소만 알면 블록체인을 통해 전송된다.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이러한 거래의 익명성 때문에 “(암호화폐가) 실제로 마약, 도박자금 등 불법자금 전송 통로로 많이 사용된다”며 “거래소 해킹 후 누구에게 암호화폐가 전송됐는지 확인할 수 없어 수사에도 여러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송금인과 수취인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는 트래블 룰 도입이 “불법 거래와 범죄를 예방하는 데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정 변호사는 설명했다. 또 그는 “실제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신속하고 정확한 수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오훈 법무법인 오킴스 파트너 변호사는 자금세탁방지를 하려면 “(자산을) 주고받은 사람이 모두 확인돼야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송금하는 측이 범죄자가 아니어도 수령하는 자가 테러리스트 등 블랙리스트에 올라온 사람일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난제 ‘트래블 룰’ 마주한 암호화폐 거래소, 기술·협력·제도 모두 필요하다

암호화폐 거래소 간 협업으로 트래블 룰 일정 부분 해결 가능, 하지만 한계도 분명해

트래블 룰이 적용되는 자금 송금이 한 거래소에서 다른 거래소로 이뤄지면 암호화폐 거래소 간 협업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기술적으론 불가능해도 거래소끼리 서로 해당 정보를 공유하면 트래블 룰에 따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권오훈 법무법인 오킴스 파트너 변호사는 “송금 또는 수령 한쪽만 따를 경우 트래블 룰의 의미가 퇴색된다”며 “FATF에서도 국제적으로 금융 선진국 모두가 자국 내 VASP에게 해당 규제를 따르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 관계자는 “각 거래소가 보유한 개인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것이 개인정보보호법 같은 법적 문제 때문에 어렵다면 해당 계정이 이상이 없는 계정이라는 것만 (거래소끼리)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이 방식으로도 트래블 룰의 도입 취지인 AML을 어느 정도 구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암호화폐 거래소 지갑에서 개인 지갑으로 암호화폐를 송금하면 트래블 룰에 따르기 어렵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암호화폐는 법정화폐와 달리 중개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송금이 가능하기에 거래소끼리 협력해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며 회의적 입장을 보였다.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도 “한 거래소의 개인이 거래소를 통하지 않고 다른 개인에 송금을 하면 수취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며 “이 경우 수취인에 대한 성명 정보를 얻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전했다.

속속 등장하는 트래블 룰 솔루션 업체, 해결사가 될 수 있을까?

결국 기술적으로 트래블 룰을 완전히 해결하긴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런 가운데 트래블 룰을 해결할 수 있다며 아이디어를 제시한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유스비(USEB)’다. 유스비는 암호화폐를 받는 수취인이 핸드폰 인증을 해야만 암호화폐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송금인이 수취인의 암호화폐 지갑 주소와 전화번호를 입력한다. 수취인은 문자로 받은 링크로 유스비 앱을 설치하고 통신사 인증을 한다. 인증이 완료돼야 암호화폐를 받을 수 있다. 해외로 송금할 경우에도 같은 절차를 거친다. 다만 이때는 “통신사 인증이 아니라 국가별로 공신력 있는 인증 시스템을 적용할 예정”이라고 김성수 유스비 대표는 전했다. 신원인증(KYC)에 방점을 둔 아이디어인 셈이다. 그러나 이 솔루션도 한계는 있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KYC를 도와주는 기능이 있어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이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송금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유스비가 제시한 솔루션이) 트래블 룰 적용에 도움이 되도록 더 보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래블 룰 해결 위해선 기술적 관점, 그리고 제도적 관점에서 봐야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 연구센터장은 “(트래블 룰은) 기술적, 그리고 제도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금도 익명성 측면에선 암호화폐와 비슷하다”며 “그럼에도 현금 추적이 가능한 건 은행권끼리 협력하도록 제도가 강제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은행에서 돈이 인출되면 그 돈이 유입되는 용처가 있기 마련이며, 간접적으로 현금 흐름을 추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 방법을 활용하면 “개인 지갑으로 보내진 암호화폐도 추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술적으로 완전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제도가 구축되면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예리기자 yeri.do@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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